법률가이드

DOMO Legal Guide

늦은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계가 다음 날 형사사건으로 번지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한쪽은 "서로 동의한 일"이라고 기억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 시간의 기억이 통째로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술에 취한 상대방과의 성관계는 정확히 어디서부터 범죄가 되는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준강간·준강제추행의 성립 구조와, '기억이 없다'는 말이 곧바로 유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차분히 정리하겠습니다.

강간·강제추행과 준강간·준강제추행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 형법은 성폭력 범죄를 수단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눕니다. 강간(제297조)과 강제추행(제298조)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입니다. 반면 준강간·준강제추행(제299조)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상대가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 곧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술에 취한 상대방과의 관계가 문제 되는 국면은 대부분 후자, 즉 준강간·준강제추행입니다.

준강간·준강제추행죄 — 형법 제299조가 정한 것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며, 그 형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예에 따르도록 규정합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준강간: 강간죄(제297조)와 같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 준강제추행: 강제추행죄(제298조)와 같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

여기서 핵심 단어는 '이용'입니다. 상대가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그 상태를 이용해 간음·추행에 나아갔을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그래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대의 상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늘 사건의 중심 쟁점이 됩니다.

'심신상실'과 '항거불능'은 어떤 상태인가

두 개념은 비슷해 보이지만 구별됩니다. 그리고 이 구별이 사건의 결론을 좌우합니다.

심신상실

심신상실은 의식을 잃었거나 정신기능의 장애로 성적 행위에 관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술에 만취해 완전히 잠들거나 의식을 잃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항거불능

항거불능은 심신상실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판례는 준강간죄에서의 항거불능 상태를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설명합니다.

결국 두 개념 모두 당시 상대방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가리키는 것이지, 단순히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블랙아웃과 패싱아웃 — '기억이 없는 것'과 '의식을 잃은 것'은 다릅니다

술과 관련된 성범죄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의학적으로 알코올이 일으키는 두 가지 상태는 명확히 구별됩니다.

블랙아웃 — 기억의 단절

블랙아웃은 술을 마신 뒤 일정 시간의 기억이 뇌에 저장되지 않는 '기억의 문제'입니다. 당시에는 대화하고 걷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등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활동했지만, 뇌가 그 순간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해 나중에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즉 블랙아웃은 '그때 의식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패싱아웃 — 의식의 상실

반면 패싱아웃은 실제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 경우에는 성적 행위에 관한 판단이나 대응이 불가능하므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법원도 이 구별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법원은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과 의식상실(패싱아웃)은 구분되어야 하며, 피해자가 사후에 '기억이 없다'고 진술한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범행 당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당시의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그래서 '만취·기억 없음'만으로 유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이 글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상대가 취해 있었다', '상대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준강간·준강제추행을 의심하게 하는 출발점일 뿐, 그 자체로 유죄를 확정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유죄가 인정되려면 검사가 다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 범행 당시 피해자가 실제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

  • 가해자가 그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했다는 점

따라서 당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이동 경로, 주고받은 메시지, CCTV, 목격자 진술 등 '그때 상대가 어떤 상태였고 어떤 의사를 표시했는가'를 보여주는 정황이 유무죄를 가릅니다. 반대로 말하면, 취한 상태였더라도 당시 명확히 의사를 표현하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할 수 있었다면 항거불능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만취와 기억 상실은 유죄의 '단서'이지 '결론'이 아닙니다.

동의가 있었는지, 그리고 가해자가 무엇을 알았는지

현행법상 성범죄의 성립은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곧장 정해지지 않습니다. 강간·강제추행이라면 폭행·협박이, 준강간·준강제추행이라면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의 이용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다만 상대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겉으로 거부의 표현이 없었더라도 그것을 '동의'로 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편 상대의 상태에 대한 가해자의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해자가 상대를 항거불능 상태라고 인식하고 행위에 나아갔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경우에도, 대법원은 결과 발생의 위험성이 있었다면 이를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상대의 상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용했는지가 사건의 성패를 가르는 이유입니다.

함께 문제 되는 강제추행의 성립요건

술자리에서는 준강제추행뿐 아니라 강제추행(제298조)이 함께 문제 되기도 합니다.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하는 범죄입니다. 종래 판례는 그 폭행·협박이 상대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보았으나, 대법원은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기준을 변경하여, 상대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의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폭행·협박이면 강제추행이 성립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 또한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신체를 만지는 이른바 '기습추행'은 그 행위 자체가 폭행에 해당해 강제추행이 될 수 있습니다.

수사·재판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것들

이런 사건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의 진술과 객관적 정황이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가 결론을 좌우합니다. 실무에서 특히 다투어지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음주량과 취한 정도: 마신 술의 양과 도수, 마신 시간, 평소 주량, 이동·대화 능력 등으로 당시 상태를 추론합니다.

  2. 당시의 의사표시: 메시지, 통화, 대화 내용에 동의 또는 거부의 정황이 남아 있었는지 살핍니다.

  3. 행위 전후의 정황: 함께 이동한 경위, 숙소를 정한 과정, 다음 날 주고받은 연락의 내용 등을 봅니다.

  4. 진술의 일관성: 시간이 지나며 진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신빙성 판단의 핵심 자료가 됩니다.

피해를 입은 분이든, 억울하게 지목된 분이든, 사건 초기에 이러한 자료를 어떻게 확보하고 정리하느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특히 대화 기록과 같은 디지털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쉬우므로 서둘러 보존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상대가 다음 날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무조건 준강간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블랙아웃'일 수 있고, 블랙아웃은 당시 의식과 판단능력이 있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범행 당시 실제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그리고 상대가 어떤 의사를 표시했는지를 정황으로 따져야 하므로, 기억 없음만으로 유죄가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서로 동의했다고 생각했는데 고소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시 상대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동의로 볼 만한 정황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대화 메시지, 통화 기록, 이동 경로처럼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를 훼손 없이 확보하고, 수사 초기부터 진술의 방향을 신중히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준비 없이 이루어진 진술은 나중에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준강간과 준강제추행은 처벌이 어떻게 다른가요?

준강간은 강간죄와 같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됩니다. 준강제추행은 강제추행죄와 같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간음에 이르렀는지, 추행에 그쳤는지에 따라 법정형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합의하면 사건이 끝나나요?

준강간·준강제추행은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재판이 진행되는 범죄로, 합의만으로 사건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피해 회복과 진지한 합의는 양형에 중요하게 반영되므로,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법무법인 도모가 함께하겠습니다

술에 취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은 '기억이 없다'거나 '동의했다'는 말 한마디로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범행 당시 상대가 어떤 상태였는지, 어떤 의사를 표시했는지, 그리고 그 상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객관적 정황으로 촘촘히 따져야 결론이 달라집니다. 피해를 회복하려는 분이든, 억울하게 혐의를 받는 분이든, 사건 초기의 자료 확보와 법리 구성이 결정적입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법무법인 도모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