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에서 합의의 의미 — 합의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2026. 07. 20.
2013년 친고죄 폐지로 이제 성범죄는 합의만으로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합의와 처벌불원, 형사공탁이 양형에 왜 결정적인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면 안 되는 이유와 합의금의 상당성까지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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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에 연루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이 '합의'입니다. 상대방과 원만히 합의하면 사건이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성범죄는 합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합의가 의미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합의는 처벌의 수위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성범죄에서 합의가 갖는 정확한 법적 의미와 그 한계, 합의금의 상당성,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면 안 되는 이유, 그리고 합의가 어려울 때 활용하는 형사공탁 제도까지 차분히 정리해 드립니다.
먼저, 합의만으로는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 친고죄 폐지의 의미
과거에는 강간·강제추행 같은 성범죄가 '친고죄'였습니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피해자와 합의해 고소를 취소하면 수사나 재판이 그대로 종결되었습니다. '합의=사건 종결'이라는 인식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6월 시행된 법 개정으로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었습니다. 성범죄를 개인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로 본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은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통신매체이용음란, 카메라등이용촬영(불법촬영) 등 대부분의 성범죄가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닙니다.
여기서 두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이고, 반의사불벌죄는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소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폭행죄나 협박죄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성범죄는 이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와 합의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받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수사가 자동으로 종결되거나 재판에서 공소가 기각되지는 않습니다. 검사는 여전히 기소할 수 있고, 법원은 여전히 유무죄를 판단합니다.
그럼에도 합의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 — 양형
합의로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면 합의가 무의미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합의는 처벌의 종류와 무게, 즉 '양형'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혐의라도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해 처벌불원 의사를 받은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는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실무적으로 합의는 여러 단계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수사 단계에서는 검사의 기소 여부와 처분의 종류에 영향을 줍니다. 피해가 회복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안에 따라 기소유예(기소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나 벌금형의 약식기소로 이어질 여지가 생깁니다. 재판 단계에서는 실형이냐 집행유예냐, 벌금이냐 징역이냐를 가르는 핵심 사정이 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성범죄 양형기준에서도 피해자와의 합의(처벌불원)와 실질적인 피해 회복은 형을 낮추는 감경요소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구속 여부나 집행유예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정은 피고인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반대로 끝까지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만큼 불리한 정상으로 남습니다. 이것이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를 '사건을 끝내는 수단'이 아니라 '결과를 바꾸는 핵심 변론'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합의서와 처벌불원서에는 무엇이 담기는가
성범죄 합의에서 실무상 가장 중요한 서류는 처벌불원서(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서면)입니다. 여기에 합의금 지급과 향후 청구에 관한 내용을 함께 정리한 것이 합의서입니다. 일반적으로 합의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깁니다.
처벌불원 의사 —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의사표시
합의금과 지급 방법 — 지급 금액, 지급 시기, 지급이 이루어졌다는 확인
부제소·이의 포기 — 합의된 사안에 관하여 더 이상 민사상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약정
비밀유지 — 합의 내용과 사건에 관한 비밀을 유지한다는 약정
여기서 반드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합의서에 '사실은 범죄가 없었다', '피해자가 무고했다'는 취지의 문구를 넣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구는 피해자를 나중에 무고나 위증 시비에 휘말리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합의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받게 만들어 오히려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합의는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진지하게 회복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또한 합의는 피해자의 진정한 자유의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강요나 기망에 의한 합의는 나중에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합의금은 얼마가 적정한가 — '상당성'의 문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합의금은 얼마를 줘야 하느냐"입니다. 그러나 성범죄 합의금에는 법으로 정해진 정가나 시세표가 없습니다. 사건의 죄명과 행위의 정도, 피해자가 입은 신체적·정신적 피해의 크기, 피해자의 처벌 의사, 가해자의 경제적 사정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개별적으로 정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 그 자체보다 '상당성'입니다. 피해 정도에 비추어 지나치게 적은 금액은 피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법원에서도 진정한 피해 회복으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금액을 성급히 약속했다가 지급하지 못하면, 합의가 깨지고 오히려 더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합의금 요구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실무 경험이 있는 변호인을 통해 사안에 맞는 합리적 수준을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합의 과정에서 상대방이 사회 통념을 크게 벗어난 금액을 요구하며 이를 빌미로 협박에 이르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별도의 공갈이나 협박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으나, 그 판단은 매우 신중해야 하므로 스스로 단정하지 말고 반드시 법률적 조력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면 안 되는 이유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에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행동 중 하나입니다. 좋은 뜻으로 사과하거나 합의를 제안하려 했더라도, 그 접촉 자체가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2차 가해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연락 자체를 위협으로 느낄 수 있고, 이는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주는 2차 가해로 받아들여져 양형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합의 종용·보복 협박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선처해 달라"는 부탁이 피해자에게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고, 자칫 협박이나 강요, 나아가 보복범죄로 오인되어 별건으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할 수 있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가 조건으로 부과된 경우(잠정조치, 보석조건 등), 직접 접촉은 그 조건 위반이 되어 구속 등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성명·연락처·주소 등)이 법에 따라 보호되어, 가해자가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합의는 반드시 변호인을 통해 진행해야 합니다. 변호인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을 통해 적법한 방법으로 피해자 측에 합의 의사를 전달하고,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무리하게 접촉하지 않으면서,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합니다. 이것이 합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2차 가해 시비를 피하는 길입니다.
합의가 어려울 때 — 형사공탁 제도(2022년 신설)
피해자가 처음부터 합의를 거부하거나 아예 연락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 피해 회복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제도가 형사공탁입니다. 공탁이란 피해자에게 지급할 돈을 국가기관인 공탁소에 맡겨 두는 것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정을 재판부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탁을 하려면 피해자의 성명과 주소 등 인적사항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보호되어 가해자가 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합의도 공탁도 하지 못하는 공백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22년 12월 형사공탁 특례 제도(공탁법 제5조의2)가 시행되었습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피해자의 인적사항 대신 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등으로 피해자를 특정하여 공탁할 수 있습니다. 즉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를 몰라도 공탁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다만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형사공탁 특례는 원칙적으로 법원에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기소된 이후)을 대상으로 합니다. 아직 기소 전 수사 단계에서는 이 특례를 이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둘째, 공탁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감형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선고 직전 급하게 이루어지는 이른바 '기습공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공탁의 경위와 금액, 진정성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탁은 어디까지나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 회복 노력을 보여주는 차선책이며, 가능하다면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받는 진정한 합의가 여전히 가장 효과적입니다.
합의는 언제 하는 것이 유리한가
합의는 빠를수록 유리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사 초기에 피해가 회복되고 처벌불원 의사가 확인되면, 기소 여부 단계에서부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소유예나 불기소로 사건이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마무리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물론 모든 사건에서 서두르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어 혐의 자체를 다투어야 하는 사건이라면, 무죄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모순되거나 불리하게 비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사건이라면 피해 회복이 빠를수록 좋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언제 어떻게 합의를 시도할지는 사건의 성격과 증거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초기에 전체 그림을 그린 뒤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피해자와 합의하면 처벌을 받지 않나요?
대부분의 성범죄는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니므로, 합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을 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합의와 처벌불원은 기소 여부와 형량을 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반영되어,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벌금형 등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높입니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나요?
합의가 어렵더라도 형사공탁 제도를 통해 피해 회복 노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만 공탁만으로 당연히 감형되는 것은 아니며, 공탁의 시기와 진정성이 함께 평가됩니다. 또한 피해자가 마음을 바꿀 여지도 있으므로, 변호인을 통해 문을 열어 두고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직접 피해자에게 연락해서 사과하면 안 되나요?
권하지 않습니다. 선의의 연락이라도 피해자에게는 위협이나 압박으로 느껴져 2차 가해로 평가될 수 있고, 접근금지 조건을 위반하거나 보복·협박으로 오해받아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합의는 반드시 변호인을 통해 적법한 방법으로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합의금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요?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죄명과 피해의 정도, 피해자의 의사, 가해자의 사정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의 크기보다 피해 정도에 비추어 상당한 수준인지 여부이며, 감당하지 못할 금액을 성급히 약속하기보다 변호인과 함께 합리적 선을 협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법무법인 도모가 함께하겠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는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결과를 바꾸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변론입니다. 합의로 사건이 종결되지는 않더라도,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와 처벌불원, 그리고 상황에 맞는 형사공탁은 기소 여부부터 최종 형량까지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무리하게 접근하면 오히려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 초기에 방향을 정하고, 적법하고 진정성 있는 방법으로 합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혐의를 다툴 사건인지 선처를 구할 사건인지, 언제 어떻게 합의와 공탁을 진행할지는 사안마다 다릅니다. 혼자 고민하다 시기를 놓치지 마시고, 비슷한 상황에 놓이셨다면 법무법인 도모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안을 차분히 함께 살펴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향을 찾아 드리겠습니다.